'기자'도 '여자'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여성 관객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최근 150만 관객을 돌파했다. 메릴 스트립의 카리스마틱한 연기와 ‘신데렐라 전문배우’ 앤 해서웨이의 변신, 그리고 황홀하기 그지없는 칼 라거펠트와 톰 포드의 향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자들에겐 분명 ‘돈 아깝지 않은’ 영화다.

이 영화는 어쩌다 패션 잡지 ‘런웨이’에 들어가 패션계의 보스 미란다의 비서로 일하게 된 기자 지망생 앤디의 이야기다. 그야말로 ‘촌티’ 팍팍 풍기던 그녀가, 44size에 목숨 걸고 ‘지미 추’에 영혼을 팔아버린 여자들이 득실대는 패션계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 이 같은 설정 상, 영화의 압권은 단연 여주인공의 변신 장면이다. 주인공 앤디는 수더분한 공부벌레 스타일에서 일순간 베스트드레서로 업그레이드하며 수많은 여성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과연 몇 주만에 단순 ‘센스’를 넘어 그런 ‘엣지’가 가능할 수 있을 진 의문이지만;;)
그러나 영화는 이처럼 그녀가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의 고뇌와 갈등을 이야기하다, 결국 자신의 신념과 사랑을 찾아 떠난다는 다소 억지스런 결말로 끝을 맺는다. 패션 산업 종사자들이 그저 허영 덩어리들이 아닌 이 시대 가장 실용적인 예술의 창조자들임을 외면하기 힘든 지금의 현실에서, 영화를 본 20-30대 여성 관객들 중 얼마나 그 결말에 공감할 지 갸우뚱했다. 정말 앤디는 ‘런웨이’에서 사랑과 신념을 버렸던 것일까?

직업 생활에 있어 옷차림은 첫인상과 그로 인한 신뢰감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더군다나 유명 디자이너들을 비롯, 수많은 패션 관계자들을 접해야 하는 패션지 편집장 비서로 일하게 된 이상, 직업에 대한 예의와 전문성을 갖춰야 했다는 점에서 앤디의 변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단지 ‘된장녀’들의 허영심에 맞장구치기 위한 객기가 아니었다는 말씀! 앤디 자신도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더 당당할 수 있지 않았을까? 또한 상관에의 충성이 제1 업무인 비서로서 자나 깨나 전화기를 끼고 살았던 앤디는 분명 프로다웠다.

그러나 미란다가 그녀를 ‘최고의 비서’라고 인정한 것은 단순히 그녀가 늘 전화를 받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복종함으로써 미란다를 만족시키려 했던 다른 비서들과는 달리, 앤디는 외모에서부터 업무 수행 능력까지 항상 노력하고 발전하는 모습으로 그녀를 ‘놀래키려’ 했음에 감동했던 것이리라. 또한 앤디 역시 그 과정에서 촌티와 함께 패션계에 대한 색안경을 벗었을 뿐 아니라, 최고의 패션 잡지를 만들기 위한 미란다의 숨은 노력과 고뇌까지 이해한 듯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주변 인물들은 하나같이 나약하기만 하다. 공짜 명품에 환호성 지를 땐 언제고 그녀가 킹카와 서서 얘기만 나눠도 오해해 홱 돌아서는 친구들에서부터, 난생 처음 가진 직업에 고군분투하느라 바빠진 그녀를 이해 못하는 ‘밴댕이’ 애인까지...(심지어 느끼하기까지 하다;;) 그는 앤디가 자신보다 일을 더 사랑하는 게 서운하다며 떠난다지만, 이건 잘 나가는 여자를 못견뎌하는 소심남들의 전형적인 자기 방어다. 사실 속내는 그녀가 전 같지 않아서가 아니라, 커져가는 그녀 앞에 점점 초라해지는 자신이 두려웠던 게 아닐까? 일과 자신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는 것은, 마치 물에 빠지면 엄마를 구할 거냐, 자신을 구할 거냐는 식의 유치찬란하고 공허한 응석일 뿐이다. 그가 진정 그녀를 믿고 사랑했다면, 그녀를 옆에서 흔들기보단 무너지지 않도록 잡아줬어야 했다.

앤디는 분명 비서로서의 경험과 미란다의 신뢰를 발판 삼아, 결국 자신이 원하는 길로 나름 ‘소신 있게’ 한 걸음씩 내딛는 중이었다. 에밀리를 제치고 파리에 왔으니 기회주의자라고? 약육강식의 직업 세계에서 엄연히 ‘능력’으로 잡은 기회를 두고 잔인하다 말한다면, ‘악마’아닌 사람 몇이나 될까. 그녀의 친구들이나 애인이 보기엔 아니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내 눈에 그녀는 결코 기자가 되겠다는 꿈이나 남자친구와의 사랑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한 듯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내 신념을 버렸었다’고 남자친구에게 고백하며, 자신을 변신시켜줬던 옷들마저 다 버리고 떠나는 결말은 쉬이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녀가 진정 패션계에 애정을 가졌었다면, 미란다만큼이나 자신을 발전시켜준 옷들에게도 감사해야 마땅해야 하거늘, 기자가 됐다고 해서 발렌티노와 샤넬은 갑자기 소장가치가 없어진다니... 이건 그야말로 옷 한 벌에도 혼을 담는다는 디자이너들에 대한 모욕이다.

뉴요커지 기자나 런웨이 에디터나, 결국 다 똑같은 女子인 것을..!!! 꼭 화려한 기회주의자, 수수한 소신주의자로 양분할 필요 있을까? ‘화려한 소신주의자’도 분명 옵션일 수 있다. 발렌티노를 벗어던진 ‘앤디’기자보다, 무채색 법정 안에서도 꼭 핑크색 수트를 입어야만 했던 ‘엘 우즈’변호사(금발이너무해)가 더 정이 가는 건 그런 이유다. ^-^
by Arie | 2006/11/16 14:06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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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야임마 at 2006/12/03 22:02
이 영화 눈요기로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었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앤디는 패션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없었기 때문에 결말에서 멋진 옷들도, 가방들도 다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물론 현실이라면 포기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겠지만 영화 속에서의 일종의 상징성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뉴요커지 기자나 런웨이 에디터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르다면 다르겠지만, 그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꿈과 야망을 향해 달려가는 것..말입니다.
Commented by Robert at 2007/04/06 01:24
nice
Commented by Naomi at 2007/04/06 01:53
h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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