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ower Of Editing-!!!
신문사 인턴시절, 편집부에서도 1달을 보냈다.
겉으로 보기와는 달리, 신문 편집은 취재기자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매우 역동적인 매력이 있다. 편집은 곧 시간 싸움이다. 6시무렵 나오는 '가'판에서부터 새벽 2시가 넘어 제시간에 '라'판이 나오기까지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속보를 채우고, 제목을 바꾸고, 지면을 다듬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정말 신문을 '만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집에 오는 신문이 '라'판이 아닌, '다'판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실 별거 아니지만, 왠지 같은 돈 내고 미완성품을 받아본단 생각에 괜시리 불끈했던 기억..ㅋ)
똑같은 기사라도 그 기사를 어떤 형식으로, 어느정도의 크기로, 무슨 제목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그 느낌과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다. 그때 당시 아동 성폭행 사망사건이 있었을 때, 타 신문사에서는 사회면 1단으로 나갔던 기사가 조선일보에서는 사회면 Top에 4단으로 실렸던 적이 있다. 그리고 다음날 후속 기사는 과감히 1면 Top으로, 그리고 일주일 내내 사회면을 비롯한 모든 지면에 아동 성폭행 관련 기사가 실렸다. 그중에서도 사망자 아동 장례식 스케치 기사는 큰 사진과 함께 거의 사회면 전면을 할애해 여론 몰이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렇게 '의도적'편집의 결과, 공론 조성에 성공해 결국 정부에서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유전자 정보 은행을 설치하는 '성범죄 종합 방지대책'을 발표하고(한나라당 전자팔찌 논란이 있었던...) 당시 피해 아동의 장례식이 있었던 2월 22일을 '아동 성폭력 추방의 날'로 제정하기까지 했다. 신문의 힘, 그중에서도 편집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던 경험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사회부 기자들과 사회면 편집기자들의 합동 회식 자리가 있었다. 이번 '공조'가 이뤄낸 성과에 대해 자축하는 의미에서 마련된 자리. 그때 사회부장께서 폭탄주잔을 부딪치며 외쳤던 구호는, 그야말로 자부심 팍팍 느껴지는 "Change the world" 그때의 그 흥분된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 구호는 그 후 술자리마다 애용되어 거의 한달을 갔다...^-^ㆀ)

그러나 어떤 기사가 편집에 의해 이렇게 키워질 수 있는 반면, 어떤 기사는 또 마구마구 짤려나가 구섞에 1단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이것을 결정하는 건 전적으로 편집기자의 권한이다. 하지만 편집기자 역시 데스크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하다. 원래 4단이었던 기사가 편집 회의 후 2단으로 줄어들기도 하고, 원래 싣고싶었던 기사를 빼야하기도 하고, 좀 파격적인 제목이나 사진은 수위가 낮춰지기도 하고... 결국 이 모든걸 결정하는건 '윗분들'이기에, 아무리 젊고 다양한 성향을 가진 취재기자들과 편집기자들이 있어도 조선일보가 조선일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직접 보고나니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언젠가 그 자리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질 것이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는 중이므로 변화의 가능성은 존재한다고 본다. 이처럼 우리나라 신문사의 편집국은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데,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중도 좌파적 성향으로 인식되는 미국의 유력지들 중 하나인 '뉴욕 타임즈'는 William Safire라는 극우 칼럼니스트를 영입하는 파격적 인사를 감행했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 신문의 '정파적'특성상, 한 편집국 내에 다른 생각들이 공존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신문이 특정 정치성향 위주의 정파적 저널리즘이 고정화된 반면 서양에서는 대부분 시장 저널리즘이 대세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은 다양한 정파적 신문들이 있어야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신문을 지원했다. 그러나 정파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신문은 결국 쇠락했고, 다수 대중에 적응한 신문들만 살아남았다. 이런 예들만 놓고 보자면, 우리나라 신문이 신뢰도를 얻기 위해선 강한 정파적 입장을 버려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과연 그럴까? 하버마스의 '공론장의 구조변화'이론에 의하면 이 예들은 '대중매체'로서의 신문발전 단계에 해당한다. 즉 인터넷 뉴스의 등장 전까지라는 얘기... 대다수 독자들을 공략하기 위한 이런 전략은 지금까지는 유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이 등장한 이상, 단순 사실 관계의 정보는 누구나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언론의 고유한 기능인 '시사 논평'이 신문의 주요 기능으로 강조될 수 밖에 없다. 또한 치열해진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제지 등 전문지가 아닌이상, 어느정도 특정 성향의 독자를 겨냥한 정파적 성향을 띨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나라 주요 일간지들이 성향면에서 별 차이가 없어 각자가 나름의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 전체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 합리적 진보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유력한' 신문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한겨레는 이제 위태위태해 보인다. 또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 신문들이 정치적 사안을 다룸에 있어서의 차분함의 결여다. 언제나 국민과 똑같이 흥분하고, 오히려 흥분을 조장하기까지 하는 신문들에게 좀 더 위엄있는 비판적 대안 언론으로서의 모습을 갖춰주길 바라는건 무리일까?
by Arie | 2006/10/03 05:03 | Journalism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hyejin112.egloos.com/tb/40305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ptodak at 2006/10/16 23:14
마지막 여섯줄 정말 공감한다.
글 잘쓰시네..허허
Commented by arie at 2006/10/17 21:08
별말씀을..허허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



about crisis of newspaper in the midia war
by Arie
Calendar
카테고리
Journalism
New media
Humanities
Communication
즐겨 찾는곳
이글루링크
Beyond Homophily
최근 등록된 덧글
hello
by Naomi at 04/06
nice
by Robert at 04/06
이 영화 눈요기로 참 좋았..
by 야임마 at 12/03
네, 저도 반가웠어요. ..
by Arie at 11/23
기사 유료화에 대해선 저..
by 실봉이 at 11/11
500kcal뿐만아니라 50000k..
by 남궁민 at 11/10
그러니까.. 스포츠신..
by arie at 10/17
별말씀을..허허
by arie at 10/17
난 크기는 안줄여도 되니..
by ptodak at 10/16
마지막 여섯줄 정말 공..
by ptodak at 10/16
rss

skin by zodiac47